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라나랍 여의 (문단 편집) == 실제 역사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계후 호이파나라씨)] [[조선]] 측의 기록이 몇 가지 있는데, 하나는 개인의 기록인 홍대용의 기록과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영조]]가 역관에게 [[청나라]]에서의 한 사건에 대해 묻는 기록이 있다. 역관은 정확한 사정을 파악할 수 없으나 황후와 관련된 사건이 하나 있다고 전달한다. 또한 홍대용의 기록에서 계황후에게 일어난 일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2가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계황후와 [[건륭제]]가 총애하는 후궁(영귀비 혹은 용비)의 싸움으로 쫓겨났다는 내용이고, 하나는 계황후가 능씨 성을 가진 시위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내용이다. 그 내용은 능씨 성을 가진 시위가 궁의 보석을 장물시장에 팔다가 걸린다. 그 시위의 집을 수색하자 계황후가 하사 받은 귀한 진주였다. 헌데 이것이 어떻게 시위의 집에 있는가 하니 황후가 시위에게 주었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시위관의 몸에서 황후의 필체와 같은 편지가 발견되자 시위관은 죽고 만다. 이에 건륭제가 계황후를 의심하며 유폐하고, 음식조차 잘 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계황후가 건륭제의 앞에서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되어있다. [[https://blog.naver.com/st01136/221373733601|출처]]. 이 기록과 릉운철이 여의를 사모하는 것, 건륭제가 여의와 릉운철 사이를 의심하다 사이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갈라진 점 등이 비슷하다. 청나라의 기록이 미비한 점, 홍대용에서 청나라 관원이 계황후에 대한 이야기하기를 저어하는 점, 계황후를 두둔하다 한 관료의 목이 날아간 점으로 비추어볼 때 단순 후궁끼리의 싸움이나 [[불륜]]의 수준으로는 황후를 폐하기 어렵지 않나 추측된다. 청나라 역사 기록에도 오전까지만 해도 황제가 친히 황후의 생일을 축하하는 생일상을 내렸기 때문에 후궁과의 싸움, 불륜이라면 굳이 황후를 남순 여행에 데려가지도, 생일 축하까지 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가장 가능성이 높은 황후의 유폐와 더불어 폐후를 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아마도 태자와 관련된 일이 아닐까 싶다. 당시 입지가 높았던 5황자와 총애의 가도를 달리던 영귀비의 아들 영염, 가귀비의 아들 등이 있었는데 이는 실로 계황후에게 많은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태자가 바로 정해진 건륭과는 달리 자신과 자신의 아들들은 황제의 엄청난 총애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훗날 자신이 태후가 되더라도 자신의 적자 아들이 어찌 될지 걱정이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한 부담이 결국 아들의 미래와 관련된 문제로 황제와 부딪혔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그 사건은 황제가 계황후에게 등을 돌리는 결정적인 일이 되었고(물론 그 전에 후궁들과의 문제가 자잘하게 있었던 것들이 아들의 문제로 폭발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 황제는 계황후 사후 계황후의 장례에 참석하지 않았고 아들인 12황자만 참석시킨다. 또한 장례의 지위도 황귀비의 예로 처리하라 했지만 실제로는 빈보다도 못한 장례 수준이었다고 한다. 유폐 당시에도 시녀를 2명만 남기는 등 답응 수준으로 대우했던 점으로 미루어볼 때 실로 엄청난 사건이 있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12황자는 건륭이 진봉시켜주지 않아 형제인 [[가경제]]가 12황자를 패륵의 지위에 올려준다. 그러나 가경제도 12황자를 그 이상의 지위로 만들어주진 않았다. 실제 계황후는 휘발나랍씨[* 기록 속에 나랍씨라고만 써있어 오라나랍인지 엽혁나랍인지 휘발나랍인지 알 수 없었지만, 최근 한 기록에서 계황후가 휘발나랍씨라는 것이 알려졌다. 여기에서 오라, 엽혁, 휘발 등은 본관과 비슷한 개념으이다.](만주 하5기 양람기)이지만 작중에서는 오라나랍씨(만주 상3기 정황기)로 나왔다. 드라마에서는 고희월([[혜현황귀비 고가씨(건륭제)|혜현황귀비]])과 같은 날 입궁한 것으로 나오나 실제로는 고희월이 먼저 입궁하고, 나중에 계황후가 입궁했다. 후궁들 중에서는 계황후가 입궁이 늦은 편에 속한다. 드라마에서는 청매죽마이기에 황제가 그녀를 황후로 만드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건륭이 존중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녀가 '오라'가 아닌 '휘발'이긴 하지만 나랍씨에 속해있기 때문에 황후가 되는데 그리 어렵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순비는 민인 출신이고 가비는 이민족 출신이니 사실상 그녀를 대적할 수 있는 성씨가 없었기에 그녀가 황후가 되는 게 맞는 수순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